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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한 바퀴 돌기-비극의 도시 체르노빌
작성자 : 관리자(admin@web2002.co.kr)  작성일 : 20.03.25   조회수 : 1135

방문객 용 Certificate and radiation badge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가장 비극적인 인재 사고였고, 관료주의적인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대가로 요구하는지를 보여준 최근의 사건이다. 최근 방영된 HBO의 드라마로 인하여 다시 세상의 관심을 끌 게 되고, 나 또한 그곳이 나의 여행 리스트에 윗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2020, 3월 13일, 나는 체르노빌 일일 투어를 다녀왔고,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혹시 약간의 오류가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예약 및 비용

 

체르노빌 관광은 국가에서 공인받은 여러 여행 업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여행을 원하는 사람은 최소 하루 전에 예약을 해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인원이 모자라 혹시라도 투어가 취소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였다, 거의 모든 버스가 좌석을 빽빽히 모두 채워 출발하였다.

일단 업체는 인터넛 후기를 바탕으로 가장 믿을 만한 "Chernobyl Tour"라는 회사를 www.chornobyl-tour.ua 통하여 인터넷 예약을 하였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투어는 없었고, 영어로 진행하는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순수 투어 비용은 $99 이였고, 식사는 $8, 방사는 측정기 (Geiger Counter) 대여료는 $10이다. 예약 시 25%를 PayPal 이나credit card로 지급을 하고, 나머지는 당일 버스 탑승 시 현금 (달러, 유로, 흐리부나)으로 지급을 한다. 예약을 마치면 당일 아침에 집합 장소와 준비물 (여권, 긴소매, 긴바지, 맨살이 노출되는 신발은 허용을 안 함)등을 이메일로 알려준다. 투어 회사가 여럿이듯이, 만남의 장소도 회사에 따라 키이프 시 내에 여러 곳이다,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는 관계로, 가능하면 숙소와 가까운 회사로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일단 투어가 시작되면 모든 투어는 같은 코스로만 다녀야 하기 해서, 어떤 투어 회사인지는 의미가 없어진다.

식사 나 음식은 본인이 챙겨가도 무방하나, 그 당시와 현재 핵발전소 직원들이 먹는 점심 메뉴를 똑같이 체험해 볼 수 있었기에 음식 맛은 별로였지만 의미가 있었다.

 

출발

 

아침 7시 반까지 모임 장소인 시내 South Station 근처로 모였다, 5-6대 정도의 15인승 미니버스들이 탑승자 리스트를 붙이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 영어 투어는 단 한대가 배정되어있었다, 가이드는 일일이 여권과 예약 정보를 꼼꼼히 비교하고, Certificate와 피폭을 측정하는 배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가이드는 최근까지 체르노빌 프로젝트에서 일을 했던 엔지니어였고, 비록 러시아식 엑센트가 강했지만 여러 가지 기술적 설명을 유창한 영어로 잘해 주었다.

 

 

투어

 

투어 버스는 약 두 시간 정도를 달려 첫 Check Point (30km zone)에 도달을 했다, 그곳에서 가이드는 탑승자 명단을 가지고 사무실에서 허가증을 받아왔다, 그동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물론 간단한 스낵도 구매가 가능하다. 여기서부터는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철저히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출입 허가를 받고, 버스는 이제 공식적으로 출입 제한 구역에 진입했다. 이용했던 2차선 도로가 사실상 현재 체르노빌 구역의 거의 유일한 도로이다. 나머지 도로는 폐쇄되거나 오래 방치되어 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수준이었다.

 

 

 

투어 버스는 큰길가에 멈추고, 가이드를 따라가니 작은 콘크리트 길이 나왔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기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던 작은 시골 마을인  Kopachi마을로 가는 도로였다. Kopachi마을은 당시 소련 전역에 있었던 농촌 마을 중 하나인데, 보통 집단농장을 중심으로 수십 내지 수백 가구가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아직도 건재하나, 목조로 지어진 것들은 방사능을 쉽게 흡수하여, 방사능 오염이 심했던 관계로, 모두 다 허물어 땅을 파고 매몰하였다고 한다, 곳곳에 커다란 무덤 같이 보이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슈퍼마켓이나, 병원, 공산당 사무소, 가옥들을 직접 들어가 보았다,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해서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고, 수풀들이 건물 안까지 자란 것을 보면 34년의 세월을 느끼게 해 준다.

 

 

 

건물 안에는 생각보다 가재도구나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대피 후, 많은 목숨을 건(?) 약탈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 앞에 떨어져 있던 방독면이 Liquidator가 착용한 방독면이라고 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발전소 복구, 방사능 오염 해결, 원자로 폐쇄 등 체르노빌 전투의 '최선봉'에 섰던 사람들을 한 곳에 뭉쳐 영어로는 'Liquidator'라고 직역했는데, 이런 마을에 투입된 임무는 보통 방사능 제독 또는 오염된 야생동물이나 개, 고양이 등을 사냥하여, 콘크리트로 매몰 처리하는 것이었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체르노빌에 도착을 했다. 체르노빌은 사실 실제 발전소의 위치하고는 꽤 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로 명명된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발전소가 들어선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 지역이었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마을 이름이 체르노빌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물론, 발전소가 지어지고 나서 발전소 바로 근처에 세워진 근무자들을 위한 신도시는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프리피야트'.  체르노빌 시내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체르노빌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고, 장기 15일간 체류 후, 제한구역 밖으로 나가 얼마간 지난 후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트리피아트 시 입구 및 강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SNS상이나 사진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보육원에 정차를 했다. 체르노빌의 노동자들이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던 국영보육원이었다. 어두 침침한 보육원 내부에는, 철골만 남아있는 아이들의 침대가 어지럽게 놓여있었고, 누구의 연출인지, 인형들이 섬찟하게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특히, 이 보육원 앞에는 핫스폿(Hot spot)이 있어 잠시 방사선 측정기(가이거 카운터)로 그 방사능을 측정해볼 수 있었다. 그냥 도로 위에서는 시간당 0.2~0.3 마이크로시버트(μSv/h) 정도로 얌전했던 방사선 치수가 가이드 분이 가리키는 나무 밑 콘크리트 포장 근처에 접근하자 시간당 2밀리 시버트(mSv/h)를 훨씬 넘는 값으로 치솟으며 위협적인 경고음을 내기 시작하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 누군가 오염물을 세척한 것 같다고 했다.

 

쇼핑몰

 

방사능 오염이 가장 심한 붉은 숲, 야적장 등을 지나 만난 곳은 프리피야트 시 기념 조형물이었다. 프리피야트 시는 이곳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그 가족을 위한 신도시였다고 한다. 구소련은 체제의 우수성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해, 이도시를 최첨단뿐만 아니라 가장 살기 좋은 홍보용 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보통 이곳에 거주하는 엔지니어들은 보수가 그 외 일반 지역 사람들보다 4-5배 정도 높고, 많은 혜택들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수영장

 

그 당시 프리피아트 시는 도시 주변에 흐르는 프리피야트 강에서는 휴양지와 근처 도시로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고, 주말에는 요트 대회가 열리던 곳이었고, 도시가 완전히 완성되기 전부터 이미 수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 신도시였다고 한다. 미리 주문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들이 갖추어진 현대식 쇼핑몰까지 있는, 당시 소련에서는 정말 파격적인 혜택을 누리던 도시였다.

 

 

프리피아트에서는 가이드를 따라 도보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계획도시답게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쇼핑, 오락, 문화시설이 자리하고, 도로를 따라 가면 주거공간, 체육공간, 학교 등이 구역별로 나뉘어 있었다.

 

 

중앙광장을 둘러본 후, 가이드를 따라 이젠 잡초가 무성한 도로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곳은 놀이 공원이었다. 1986년 5월 1일 노동절 행사에 맞추어 개장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해 4월 26일 새벽 1시 26분경, 도시에서 약 10km 떨어진 원자력 발전소에서 '바로 그'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틀 후인 4월 27일 오후에는 도시 거주자 전체가 모두 대피했기 때문에, 놀이공원은 정식 개장하지 못했다. 마치 프리피야트 시, 체르노빌 사고의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관람차.

놀이공원이 정식 개장하지는 못했으나, 유일하게 이 관람차만큼은 4월 26일 오후에 잠시 가동을 했다고 한다. 소련 정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고를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언론 통제를 하고 있었는데 이 도시 주민들은 발전소의 사고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은 육상 트렉, 시야를 돌려야만 비로소 내가 육상 경기장 트랙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고 이전까지는 육상 경기장의 원래 용도로 사용되었고, 사고 직후에는 소련 전역에서 도착한 노동자(liquidator)를 빨리 교육시키기 위한 교육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프리피아트를 돌아본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건물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피폭량이 안전한 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우습게 생긴 기계 앞에서 양손을 대고 서있으면, 안전한지 불이 들어오는데,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식사를 가져온 사람은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고, 미리 점심을 예약한 사람들은, 현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같은 식사를 할 수 있다, 맛은 별로 였지만 좋은 체험이라 추천하고 싶다. 식당 앞에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식사 후 본격적인 발전소 투어를 시작하였다. 사고 후 그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발전소 4호기 앞에 도달하였다, 두 손을 모은 듯한 조형물이 서있고, 커다란 석관이 사고 현장을 덮고 있었다. 1986년 사고 당시에 급조했던 석관은 예상 수명이 20에서 30년이었다. 이를 대체하고자 유럽 및 미국에서 기금을 모아 설치 한 새로운 체르노빌 석관(NSC: New Safe Confinement 또는 The New Shelter)이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10년 이상 제작한 인류 최대의 이동형 금속 구조물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았고, 앞으로 100년 이상, 사고 당시 급조한 석관이 파손되더라도 방사능 유출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에서 가이드는 어떻게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이 소련의 거짓말과 묵인 아래 희생되었는지를 설명하며, 약간 격양된 감정으로 보였다.

 

발전소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죽음의 다리 (Bridge of Death)를 통과하였다, 드라마에 의하면, 4호기 발전소가 폭발한 후 프리피아트의 사람들이 이곳에 나와, 불꽃놀이를 구경하듯이 하늘로 치솟는 강력한 방사능 누출을 온 가족이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사람들은 수일 이내에 모두 죽고 말았다. 가이드는 이 시점에서 드라마는 사실이 아니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다음 행선지는 소련의 초 수평선 레이더(Over-The-Horizon RADAR, OTH RADAR)가 설치된 곳이다.

버스는 중앙 도로를 벗어나 숲 속 작은 길로 달려간다, 30년 가까이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군사 도로, 속도계를 보니 실제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덜컹덜컹 흔들리는 차, 주변에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숲, 그리고 갑자기 울려대는 방사능 경고음이 뒤섞여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소련의 초 수평선 레이더 기지였다. 정식 명칭은 Duga(Дуга)-1. 이는 군사 위성이나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 또는 강력한 레이더 시스템을 갖춘 전투함들이 실전 배치되기 이전,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포착하기 위한 레이더로서 엄청나게 강력한 전파를 이용하여 지평선 너머를 감시하는 레이더였다, 하지만 극지방에 존재하는 전리층의 거대한 홀 때문에 하루에 약 15분간은 제대로 동작되지 않아서, 사실은 완벽한 장치가 아니였다고 한다.

Duga-1 레이더는 1976년 이곳에서 운영을 시작했고, 1989년까지 전파를 발신했습니다. 즉, 원자력 사고 이후에도 혹시 모를 적국의 위협에 대비해... 약 3년간 이 위험한 곳에서 군인들이 계속 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10kHz 대역에서 주로 전파를 발진했기 때문에, 이 레이더가 가동되면 민간 단파라디오, 항공무선통신 등에서도 이 전파를 수신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당시 단파 라디오, 항공기 통신기 등에는 이 전파를 차단하는 필터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The Russian Woodpecker(딱따구리).

높이는 약 135~150m, 가로로는 약 700m가 넘는 거대한 구조물입니다. 이 구조물은 Duga 레이더 시스템의 발진 안테나이며, 전파 송신 안테나는 동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한다.

발진 안테나가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게 되므로, 전력을 끌어다 쓰기 좋은 발전소 근처에 발진 안테나를 설치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이곳이 군사 시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곳곳에 버려진 군용 자동차, 군용품의 흔적이 보였다.

 

덜컹거리는 군사도로를 뒤로하고 버스는 이젠 다시 체크포인트로 이동을 하였다,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우스꽝스러운 전신 방사선 측정기를 차례로 통과하였다. 버스는 다시 두 시간 동안 왔던 길을 통해서 키예브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를 관광하는 사람에게는 체르노빌을 꼭 가보라고 하고 싶다, 관광이나 투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비극적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고향을 잃었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걸어가며 전투를 벌인 곳이다. 그들의 숨소리와 울분이 귓가를 스치는 것 같았다.

 

 

또 하나의 팁은 투어에 앞서, 체르노빌 드라마를 꼭 보고 가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단순히 가이드의 설명만을 듣는 것보다는, 내용을 자세히 이해하고 둘러보면, 드라마 장면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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